시
부평초 / 우원규
우원규
2025. 5. 12. 16:03

부평초 / 우원규
언제쯤 꽃 피우고 열매 맺을지 묻는 이도 이젠 없다
씨앗으로 태어나 여전히 씨앗으로 썩을런가 보다
은은한 5월의 달빛을 타고 질주하는 배꽃 향기였던가
하지만 아직 내 뇌리를 서성이는 엷은 그림자
어느 우중충한 겨울날
밤하늘의 아린 별이 되어버린 그녀
생의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서 배회하는 나를
따스한 노을색으로 어루만진다
우울과 조울의 이중변주곡이 연주되는 이 세상에서
끝이 뻔히 보이는 어설픈 게임에서는
흥분과 허무가 시소를 탄다
스산하게 푸른 하늘엔
희미한 낮달이 얼룩진 얼굴로 자기 실존을 탐색한다
심장 속 은밀한 공간에 꼭꼭 숨겨두고 싶은
그녀와의 백색 기억마저도
눈 아지랑이 속으로 아스라히 멀어져 간다
이렇듯 시간은 내게 소중한 모든 것들을 빼앗아
나를 더 삐걱거리게 한다
나사 풀린 낡은 의자처럼
<계간 애지> 2025년 여름호
*10년전 쯤에 쓰다가 미완성으로 남겨둔 시를 이번에 다시 써서 발표했는데 그 당시의 감성으로 시를 새롭게 완성했다.

우원규 시인
경북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만다라문학 시 신인상(2009)
만다라문학 단편소설 신인상(2010)
한국문학신문 단편소설 작품상(2011)
시집 《위로》(2012)
선수필 신인상(2013)
시집 《꿈속에서 또 꿈을 꾸다》(2025)
티스토리 "우원규 시인의 서재" 운영
명상을 하며 시 쓰는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