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마트폰으로 직접 촬영한 사진들과 디카시 70편입니다. 마음껏 감상하시고 저작권은 꼭 존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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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21일 우원규

자작나무
나무는 무욕이라 무심하게 서 있다
나도 이따금씩 나무가 되고 싶다
비루한 인간의 오욕칠정을 다 버리고
말갛게 초록인 태고의 숲속에서
한 그루 하얀 자작나무로 서고 싶다

풍경소리
절에 가면
비우는 맛이 있어
참 좋다
숲속 적막한 산사 뒤뜰엔
정답게 속삭이는 댓잎의 어울림 사이로
허공을 가르는 풍경소리만 심심하다

넋두리
닳고 닳은 이야기들
어제도 울었고
오늘도 웃었던
뻔한 이야기들
한 송이 가녀린 넋이
이승과 저승 사이를
길을 잃고 돌고 돌며
꿈속에서 또 꿈을 꾸네

봄을 훔치다
나는 오늘 꽃가게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주인 몰래
보라색 봄을 훔쳤다

기억의 소환
짧을수록
더
애틋한

은빛 용의 전설
수천 년 전부터
갑천을 지킨다는 전설의 용
저 반짝이는 수려한
은빛 비늘을 보라

봄날, 꽃이 내리다
싱그러운 꽃은
떨어지는 소리조차
봄날이다

위로
나는 오늘도
파아란 가을 하늘 아래서
하루분의 위로를
사진에 담아봅니다

영웅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은 틀렸다
영웅의 눈에는 세상이 항상 난세다

붕괴
머리부터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깨어진 상념 조각들이 어지럽게 나뒹구는 동안
전화기에선 같은 말이 계속 반복되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세상에 없는 번호입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세상에 없는 번호입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세상에 없는 번호입니다

디자이너
살아있는 동안
한 번은 꼭
만나 보고 싶다
이 꽃 디자이너

늪
늪은
사람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다

고양이 묘(猫)
나무 아래
묘한 눈빛
발걸음을 멈추게 하네

투명을 동경하며
나는 늦가을 밤하늘에 걸려있는
붉은 은하수를 가로지르는
한 줄기 투명한 바람이고 싶다

별빛에 취하다
선선한 밤하늘 쏟아지는 별들을 올려다 보며
풍진 세상 오욕칠정 씻어주는
천상의 감로주
초승달에 철철 부어 들이키니
아...별빛에 취한다
기분이 좋아 날아갈 듯하다

生命: 살라는 명령
높다란 울타리 위에
우뚝 솟은 풀 한 포기
하여간
틈만 있으면!

자화상 1
무언가 적어보려다 지운다
생각이 끊어진다
그냥 물끄러미 침묵한다
강가에 앉아

자화상 2
올해도 시나브로
봄 햇살이 따스하니
겨우내 그늘진 내 몸에서도
보라색 풀꽃이 피어난다

자화상 3
참
끼워 맞추기 힘든
퍼즐

그림자 사랑
당신은 한 줄기 투명한 바람
대답 없는 빗소리
소리 없는 달빛
보이지 않는 속삭임
아무도 몰래 나를 찾아와
허브향 진하게 뿌려놓은
당신은 나의 그림자

비밀
산과 사람은
멀리서 볼 때
더 아름답다

시의 유희
호랑나비의 팔랑대는 날갯짓이
내 머릿속 낱말들을 조합해
살아있는 시가 되게 한다
백색의 땅에 까만 의미를 낳는다
노오란 날갯짓이 여유롭다

불면증
나는 태초로부터 이어져 온
내 안의 모든 동물적 유산들과 마주할 때마다
무서운 자괴감에 밤잠을 설친다
오래된 신들의 이야기는
저 멀리 푸른 안개 속에서 내게 다정히 손짓하는데
오라는 건지 가라는 건지
창밖엔 무심한 빗소리만 요란하다

몽환
정녕 꿈이었던가
우리의 짧은 만남이

향수(鄕愁)
내 가슴엔 늘
붉은 노을이 지고 있다
천상의 일곱 빛줄기와 함께

설치미술 1
알죠?
저 의자
누가 넘어뜨렸는지

설치미술 2
별의 궤적
나의 궤적
우주먼지들의 카오스

사인 시집을 사다
노란 팬지 꽃잎 하나 주워들고 올라간
중고서점 문학 분야 서가에서
우연히 어떤 시인의 사인이 적혀 있는 시집을 손에 들었다
잠시 먹먹한 정적이 흘렀다
흰색 펜 글씨가 서운한 듯
공기 속으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퇴색하고 있었다
나는 오늘 시인의 사인이 적혀 있는 시집을 샀다
하얀 사인의 온기가 죄다 사라지기 전에

흔한 동네 카페
동화 속 풍경인가
저 이국적인 채색은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인가
세계적인 것이 우리 것인가

여신의 눈동자
세상을 굽어 살피는
자애로운 여신의 눈동자
꿈속에서 또 꿈을 꾸며
노을색으로 저문다

검(劍)
가를 수 없는 바람
중심이 없는 곡선
흔들리지 않는 심장
마음이 없는 빛
할(割)!

향
황금 향로에 향 하나 올리니
두 줄기 하얀 춤사위가 멋스럽게 피어난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며 서로 어르는 교태가 원앙처럼 정답기만 하다
뜨겁게 불사르고 멋지게 흩어지는
연기 같은 인생에 후회는 없다
목련 나무 그늘에 촘촘히 서 있는 맥문동은
보랏빛 향기를 온몸으로 사르고 있다

늙는다는 것
몸이 늙는 건 어쩔 수 없으나
정신이 늙는 건 슬픈 일이다

연(蓮)
내 가슴 속에
니가
아무도 몰래
살며시 피어나길

생각의 행간
무너지지 않는 적멸
사물의 이면에 내재한 도도한 흐름
번뇌가 내 폐부를 찌를 때 철수할 수 있는 유일한 동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온화한 미소
존재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빛
노란 들꽃이 주장하는 자유
하나이면서 둘도 되는 역설
안과 밖이 투명한 의식
아름다운 곳이라도 오래 머물지 않는 무소유
천 년 동안 돌처럼 굳어버린 관념이 아닌 직관의 눈빛
비어 있는 사이가 아닌 꽉 차 있는 사이
생각이 아닌 생각의 행간
생각과 생각 사이에 존재하는
침묵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

미친 바람
바람이 미치면
나무도 미친 듯 춤을 추고
나도 미친 듯 날아오른다

역사
역사책을 펼치면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나를 심다
봄은 담벼락을 타고 붉게 피어나고
나는 처절한 심정으로 봄뜰에 나를 심는다
운 좋게 삼복더위를 잘 견뎌내면
가을쯤이면 내 가슴 언저리에도
연분홍 꽃잎 하나 피어나리니

역설
너무 밝은 빛은 보이지 않고
너무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할(喝)!

꿈속에 갇히다
나는 오늘
꿈속에 갇혔다
정말, 지랄 같은 꿈이다

친구
어차피 홀로 가는
고독한 이 세상을
함께 걷고 있는 너
비록 가는 길은 다르지만
멀리서 지켜봐주는
너의 따뜻한 미소를 느낄 수 있어
항상 든든하다
술 한 잔 부딪히며
쓰라린 과거를 원샷으로 지우며
두 손 꽉 움켜 잡고
술취한 세계 제패의 내일을
뜨겁게 들이마신다

도시의 야경
화려한 도시의 불빛들이
황금빛 노을과 어우러져
묘한 감상을 자아낸다
도시로 내려가는 계단은
갈수록 점점 더 냉랭해진다

CCTV
나를 촬영하는 널 촬영하는 나
너를 촬영하는 날 촬영하는 너

은둔자
나는 한때
소설의 주인공이기도 했고
영화 속의 한 인물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은둔자로서
숲속에 은거하며
나는 세상을 알지만
세상은 나를 모른다

말할 수 없는 세월
침묵의 항변
깊은 슬픔
차라리 꿈
그리고, 그림자

행운
가끔
행운은
기척도 없이
내 어깨를 두드린다

파도타기
길吉은 행幸이요
흉凶은 복福이다
행복은 넘실거리는 길흉의 파도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멋들어지게 운유雲遊하며
멀리서 손짓하고 있는 피안彼岸으로 흘러간다

백조
늦가을 서쪽에서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에
쓸쓸하게 고요한 호수 위로
어디선가 하아얀 꽃잎 하나 날아드니
무심한 내 마음에 잔잔한 파문이 번진다

군상(群像)
약육강식
승자독식
인면수심
자승자박

인생
사이다처럼 우리에게 잠시 청량감을 주는
한순간의 환희를 걷어내고 나면
여전히 우리 앞에는 엄혹한 현실이
시커먼 괴물처럼 포효한다

그리움
그리움은
세월의 간격보다
더 질기다
카페 詩月
누군가는 내게 인연이 되고
누군가는 내게 운명이 된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신을 바라본다는 건
아! 목이 너무 아프다

텅 빈 뜰
텅 빈 뜰에 그림자 하나 서 있다
고뇌에 찬 눈빛
황금 물결에 잠시 머물다 간다
인생 별거 없다
수선 떨지 말자

꽃과 단풍
아름다운 꽃은 시들 뿐
곱게 단풍이 들지 않는다

기다림
기다림도
길어지면
병이 된다

단풍은 붉어야 맛이지
단풍은 붉어야 맛이고
사람은 진실해야 맛이지
단풍처럼 붉게 진실해야 맛이지

시선
파리가 교미한다
우리의 삶도
나처럼 이렇게
내려다 보는 시선들이 있겠지

바람길
바람길 위에 서면
흩날리는 머릿결 사이로
젊은 날의 치기 어린 일들이
바람처럼 흩어진다

찬란한 기쁨
올록볼록
섹시한 저 몸매들
곧 늙어지겠지
마음이 아름다운 그대
나 가진 것 없으나
널 갖지 않는 사랑을 하리

무당벌레
등에 자기 무덤을 짊어지고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서
설렘과 허무 사이에서
배회하는 참 서글픈 녀석

성장의 꿈
내 영혼이 어서 쑥쑥 자라서
하늘을 뚫고 올라가
우주까지 닿았으면 좋겠다

고사목
나
아직
안 죽었다!

넌 내게 딱 맞아
250은 좀 작고
255는 좀 크지
넌 252.5 정도 되나 봐
지구에는 없는 줄 알았어
이미 넌 내 몸과 하나야
널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딜레마
여자!
없으면 외롭고
있으면 괴롭다

설雪날
고향 가는 길
축복해 주는 오지랖
순백의 화이트 카펫
애먼 열차만 거북이걸음

착시 효과
고즈넉한 황혼의 노을을
함께 바라보는 노부부
한 사람인지
두 사람인지
홀연히 겹쳐 보인다

예술혼
도대체
누구를 위한
수고로운 발자국인가

오직 사랑뿐
거짓도 난 몰라요
위선도 난 몰라요
질투도 난 몰라요
차가운 눈을 녹이는 따스한 사랑뿐
오직 사랑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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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규 시인
본명: 우용수
경북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만다라문학 시 신인상(2009)
만다라문학 단편소설 신인상(2010)
한국문학신문 단편소설 작품상(2011)
시집 《위로》(2012)
선수필 신인상(2013)
시집 《꿈속에서 또 꿈을 꾸다》(2025)
시노래 시와 작곡 5건, 노래 작사 2건
티스토리 "우원규 시인의 서재" 운영
명상하며 시 쓰는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