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견공의 가르침 / 우원규
반려견처럼 특별히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사랑을 독차지하는 동물도 드물 것이다. 그에 비하면 소는 늙어 죽을 때까지 주인을 위해 몸 바쳐 일하지만, 개만큼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다. 농부는 소를 가족처럼 생각한다고는 하지만 어디 반려견에 비할쏘냐.
도시에서는 반려견을 집 안에서 키우며 마치 늦둥이 돌보듯 애지중지하면서 여름엔 더우랴 에어컨도 켜주고 겨울엔 추우랴 옷도 입힌다. 심지어 선그라스에 신발까지 신겨서 산책하는 모습을 보면 귀엽기도 하지만, 한편 당황스러운 감도 없지 않다. 이건 정말이지 동물이 아니고 사람보다 낫다. 아주 상전 노릇을 하는 갑 중의 갑이다. 오죽하면 반려견을 귀족처럼 견공(犬公)이라고 높여서 부르고, 주인이 오히려 반려견의 집사로 자처하겠는가.
개가 견공으로 존중받는 것은 아마 주인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사람은 배신해도 개는 주인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게다가 가끔 위기에 처한 주인의 목숨을 구한 기특하고 용맹한 개들이 있어서 더욱 사랑받는 듯하다. 정말이지 그럴 때는 자식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게다가 개는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특유의 애교가 있다. 어떤 반려견은 주인이 근처에 오기만 해도 비행기 프로펠러 돌아가듯 그 짧은 꼬리를 흔들어대는데, 그걸 보는 주인은 마음의 모든 근심이 녹아내리고 가슴에 반려견에 대한 사랑이 샘솟는다.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위로가 어디 있겠는가. 늘 주인 곁에 함께하며 주인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견공들.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나는 견공들을 볼 때마다 그 특유의 사교성에 놀라곤 한다. 투명한 눈망울로 물끄러미 바라보며 꼬리만 살살 흔들어주면 남녀노소 모든 사람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나로서는 견공들의 사교성과 애교 전략에 관해 좀 더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사랑받고 싶으면 견공들처럼만 하면 된다. 사람을 가리지 말고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면서 꼬리만 연신 흔들어주면 다 내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니, 이 얼마나 놀라운 처세술인가. 돈 한 푼 안 들이고도 모든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
핵심은 내가 먼저 사랑을 표현해야만 나도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견공들은 사랑의 표현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존재들이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표정도 살짝 굳어지고 경상도 사람이라 말투도 무뚝뚝한 나는 마음에 있는 애정을 표현하는데 굉장히 미숙하다. 간혹 말 없이 무표정하게 앉아 있으면 화가 난 것으로 오해받을 때도 있다. 그래서 견공들의 처세술을 배우려고 하는 것이다.
더구나 견공들은 자신을 낮출 줄 안다. 배를 바닥에 딱 붙이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봐도 애교가 잘 먹히지 않을 때는 최후의 필살기를 사용하게 되는데,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서 배를 훤히 드러낸 채 상대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서약한다. 이런 행동이 간혹 줏대도 없이 아무에게나 아부하는 것으로 오인되기도 하지만, 견공들의 이런 행동은 진정한 충성심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경박스러운 아부와는 다르다.
반대로 나는 좀 뻣뻣한 편이다. 나는 평소에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에 사람 없다는 생각을 갖고 인생을 살다 보니 거만해져서 다른 사람을 무시할 일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만만해 보이거나 내 줏대도 없이 순순히 따르는 편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자기 색깔이 분명한 편이어서, 일률적인 행동 방식을 강요하는 조직사회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꼬리 없는 원숭이 취급을 받을 때가 있어서 슬프다. 자신들과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획일적인 사회 분위기가 나는 정말 싫다.
이래저래 견공들에게서 배울 게 참 많다. 하지만 막상 견공들을 따라 하려 하니 왠지 자신이 없어진다. 내 성격에 과연 누구 앞에서 꼬리를 살랑거리거나 배를 뒤집어 무조건적인 복종을 맹세하는 따위의 일이 어디 가당키나 하겠는가. 어쩌면 사람이 개를 닮겠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개는 개만의 생존법이 있을 테고, 나는 나대로 내 몸에 맞는 처세술을 익혀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다행이다. 자칫 개를 스승으로 모실 뻔했다. 하지만 개에게서라도 배울 것이 있다면 배우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세상엔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 많아서 하는 소리다. 개들이 사랑받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끝)
*오늘 처음 발표하는 수필이다.
우원규 시인
본명: 우용수
경북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만다라문학 시 신인상(2009)
만다라문학 단편소설 신인상(2010)
한국문학신문 단편소설 작품상(2011)
시집 《위로》(2012)
선수필 신인상(2013)
시집 《꿈속에서 또 꿈을 꾸다》(2025)
시노래 시와 작곡 5건, 노래 작사 2건
티스토리 "우원규 시인의 서재" 운영
명상하며 시 쓰는 남자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체험 수기]샤르 행성 여행기 (0) | 2025.06.17 |
---|---|
[수필]신비로 가득 찬 세상 / 우원규 (0) | 2025.06.17 |
[수필] 화승(畵僧) / 우원규 (0) | 2025.05.22 |
[수필] 얼굴에 관한 소고 / 우원규 (0) | 2025.05.21 |
[수필] 투명을 동경하며 / 우원규 (0) | 2025.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