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으로 보는 연희 / 우원규
12살 연희는
손으로 엄마를 봐요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섬세하게 봐요
손으로 나무를 보고
손으로 예쁜 꽃들과 시선을 맞춰요
손가락을 살살 깨물어주는
강아지 해피를 가장 좋아해요
손으로 책을 읽는 연희
점자책에 가만히 손을 대고 보면
올록볼록한 미로 속에
숲도 있고 파란 하늘과 별들도 있지요
<시산맥> 2025년 여름호

친구 사이
비가 갠 아침 몽실몽실 피어나는 뭉게구름 사이로 전학 간 내 친구 다연이의 하얀 얼굴이 살포시 웃고 있다 바로 그때 신기하게도 다연이에게서 오랜만에 문자 메시지가 왔다 서로 마음이 통했나 보다 우리는 친구니까
<아동문예> 2014년 11, 12월호

엄마자리
별자리에 관한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반딧불이처럼 빛을 내는 별들이
밤하늘을 날아다니며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 사이에
활짝 웃고 있는 엄마 얼굴을 커다랗게 그려놓았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엄마자리"라고 이름 붙였다
밤에 옥상에 올라가 아무리 찾아봐도
하늘에는 없는 내 마음속 별자리

비둘기 요정
공원에 그 아이만 나타나면
비둘기들이 우르르 모여든다
긴 머리의 예쁜 여자 아이는
오늘도 비둘기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비둘기들과 대화하며 함께 어울려 논다
여자 아이의 머리와 어깨 위에도
비둘기가 사뿐히 내려앉는다
그 아이의 등에서 투명한 날개가 햇빛에 반짝인다
내 눈에만 보이는 건가?
착한 아이 눈에만 보인다더니. 푸핫!

비눗방울 놀이
나리나리 참나리
검정 반점 분홍 꽃
호랑호랑 호랑나비
비눗방울 후~ 불면
자리자리 잠자리
바람 타고 두둥실
방울방울 호랑나비
방울방울 잠자리
방울방울 아가 동생
바람 타고 두둥실

꽃무늬 얼굴
엄마가 새로 사주신
예쁜 꽃 자수 놓인 베개
자고 일어나니
뺨에 찍힌 꽃 한 송이
손 다리미로 쓱싹쓱싹
학교로 고고씽

왜요산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왜요?
산이 높으니
선생님도 헉헉 숨이 가쁘다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산이 높을수록
선생님의 몸은 천근만근
마음은 싱글벙글

사진
사진은
지워지지 않는
한 조각의 기억
내 마음 속에 영원히 간직될
나만의 조그맣고 네모난 시공간

흔적
하아얀 구름 위에
두 갈래 고양이 발자국
간밤의 눈보라 속을 헤집고
몰래 다녀간 곳은 골목 끝 음식물 쓰레기통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포근한 솜이불 위엔
텅 빈 위장만 찬 바람을 맞서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웅크리고 있다

어떤 기도
주기도문을 외다가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하느님 아버지가 계신다면
하느님 어머니도 계시는 건가?
엄마께 여쭤봤더니 웃으시며
"하느님 어머니는 여기 있잖아" 하셨다
엄마의 개그는 항상 썰렁하다
내 방에 가서 가만히 두 손을 모으고
하느님 어머니를 간절하게 불러 보았다
하느님 아버지처럼 대답이 없었다

노란 봄
엄마랑 시장에 갔더니
종이 상자 안에서
노란 봄이 삐약삐약 소리를 질렀어요
2천 원 어치의 봄을 사서
종이 상자에 곱게 담아왔어요
집에 풀어놓으니
온 집안에 노란 봄꽃들이
아장아장 뒤뚱뒤뚱
귀엽게 걸어다녀요

오후의 연못
개굴개굴
개구리가 합창하는 연못 위에는
흰 구름이 떠가고
나무는 거꾸로 서서 졸고 있어요
개구리 소리가 시끄러워
물속에 머리를 박고 있어요
나뭇가지 사이로
금붕어 가족이 나들이를 하고요
그늘진 난간에는 잠자리가
지친 날개를 쉬고 있어요

봄비의 노래
음악 시간에 선생님은 피아노를 치시고
창 밖에는 봄비가 내린다
빗방울이 똑똑
미끄럼틀 위에서 솔파미솔
오선지 위에 콩나물 쑥쑥
시도라솔 파파미
수선화의 노란 눈망울에도 풍덩
미미라레 미솔라
피아노 건반에 맞춰
창 밖에는 봄비가 노래한다

감사한 하루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놀다가 집에 오는 길에 보도블록 위에 떨어진 반이 접힌 만 원짜리 한 장을 주웠다 주인을 찾아보았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아빠가 용돈을 올려주시게 해달라는 간절한 내 기도의 응답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내일부터 기도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보내주신 용돈 잘 쓸게요
※ 저작권을 존중해 주세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우원규 시인
본명: 우용수
경북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만다라문학 시 신인상(2009)
만다라문학 단편소설 신인상(2010)
한국문학신문 단편소설 작품상(2011)
시집 《위로》(2012)
선수필 신인상(2013)
시집 《꿈속에서 또 꿈을 꾸다》(2025)
시노래 시와 작곡 5건, 노래 작사 2건
티스토리 "우원규 시인의 서재" 운영
명상하며 시 쓰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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