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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견공의 가르침 / 우원규 견공의 가르침 / 우원규 반려견처럼 특별히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사랑을 독차지하는 동물도 드물 것이다. 그에 비하면 소는 늙어 죽을 때까지 주인을 위해 몸 바쳐 일하지만, 개만큼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다. 농부는 소를 가족처럼 생각한다고는 하지만 어디 반려견에 비할쏘냐. 도시에서는 반려견을 집 안에서 키우며 마치 늦둥이 돌보듯 애지중지하면서 여름엔 더우랴 에어컨도 켜주고 겨울엔 추우랴 옷도 입힌다. 심지어 선그라스에 신발까지 신겨서 산책하는 모습을 보면 귀엽기도 하지만, 한편 당황스러운 감도 없지 않다. 이건 정말이지 동물이 아니고 사람보다 낫다. 아주 상전 노릇을 하는 갑 중의 갑이다. 오죽하면 반려견을 귀족처럼 견공(犬公)이라고 높여서 부르고, 주인이 오히려 반려견의 집사로 자처하겠는..
[수필] 화승(畵僧) / 우원규 화승(畵僧) / 우원규 내가 경기도 분당에 살 때였으니, 대략 20년쯤 전에 만났던 한 스님과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분당의 율동공원 옆에 있는 나지막한 산에 00사라는 절이 있는데, 지인의 소개로 그 절의 주지 스님과 친분이 생겨서 가끔 만나서 곡차도 한잔 하면서 도담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스님을 처음 뵌 것은 분당 시내의 어느 카페에서 있었던 조촐한 차 모임에서였다. 키가 작지만 강단 있어 보이는 모습의 스님이었고, 얼굴 혈색이 대춧빛처럼 불그스레한 게 아주 건강해 보이셨는데, 나중에 스님에게 들어서 알게 된 사실은 스님이 젊은 시절 어떤 도인을 만나서 배운 기공을 매일 실천하고 계시는데 그게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첫 번째 만남은 그렇게 차를 마시며 서로 통성명하는 ..
[수필] 얼굴에 관한 소고 / 우원규 얼굴에 관한 소고 / 우원규인간의 복잡다단한 존재 양상과 다양한 문화를 들여다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의 기묘함에 관해 깊이 묵상하게 된다. 동물과 신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층차의 의식(意識)들이 만들어내는 천태만상의 요지경이 바로 지구에서의 삶이다.내가 항상 신기하게 생각하는 건 사람은 뭘 믿고 살든 밥만 먹어주면 잘 산다는 사실이다. 교회나 성당에 다니든 절에 다니든, 아니면 어떤 희한한 종교단체처럼 진돗개를 신으로 받들고 살든, 천동설과 지구편평설을 믿든, 돈과 권력을 신으로 숭배하든 아무런 상관없이 잘 산다. 그게 내게는 항상 신기하다. 어쩌면 우리는 공간적으로는 같은 지구에 살지만 정신적으로는 각자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심지어 인도에는 고행을 통해 카르마를 소멸하고 깨달음에 이르기..
[동시]손으로 보는 연희 / 우원규 계간 2025년 여름호에 실린 내 동시손으로 보는 연희 / 우원규 12살 연희는손으로 엄마를 봐요눈으로 보는 것보다더 섬세하게 봐요손으로 나무를 보고손으로 예쁜 꽃들과 시선을 맞춰요손가락을 살살 깨물어주는강아지 해피를 가장 좋아해요손으로 책을 읽는 연희점자책에 가만히 손을 대고 보면올록볼록한 미로 속에숲도 있고 파란 하늘과 별들도 있지요🦋 🦋 🦋🦋 🦋 🦋우원규 시인경북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만다라문학 시 신인상(2009)만다라문학 단편소설 신인상(2010)한국문학신문 단편소설 작품상(2011)시집 《위로》(2012)선수필 신인상(2013)시집 《꿈속에서 또 꿈을 꾸다》(2025)티스토리 "우원규 시인의 서재" 운영명상을 하며 시 쓰는 시인
부평초 / 우원규 부평초 / 우원규 언제쯤 꽃 피우고 열매 맺을지 묻는 이도 이젠 없다씨앗으로 태어나 여전히 씨앗으로 썩을런가 보다은은한 5월의 달빛을 타고 질주하는 배꽃 향기였던가하지만 아직 내 뇌리를 서성이는 엷은 그림자어느 우중충한 겨울날 밤하늘의 아린 별이 되어버린 그녀생의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서 배회하는 나를따스한 노을색으로 어루만진다 우울과 조울의 이중변주곡이 연주되는 이 세상에서끝이 뻔히 보이는 어설픈 게임에서는흥분과 허무가 시소를 탄다스산하게 푸른 하늘엔 희미한 낮달이 얼룩진 얼굴로 자기 실존을 탐색한다심장 속 은밀한 공간에 꼭꼭 숨겨두고 싶은그녀와의 백색 기억마저도눈 아지랑이 속으로 아스라히 멀어져 간다이렇듯 시간은 내게 소중한 모든 것들을 빼앗아나를 더 삐걱거리게 한다나사 풀린 낡은 의자처럼 2025년 ..
카오스의 변명 / 우원규 카오스의 변명 / 우원규 본래 그렇게 생겨 먹은 걸 어떡하라고태어난 순간부터 생존 본능에 충실했을 뿐아비규환의 아수라장이라도 행복하다 생각하면 행복한 거지의미 따위에 집착하지 않아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지갈바람에 낙엽이 지는데 의미는 무슨원치 않아도 아무리 외면해도 삶은 전쟁이지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안락의자에 앉아 있다고 해서평화가 허락되는 건 아니더군천둥소리가 세상을 겁박하고 번개가 작렬하는 밤쏟아지는 빗줄기와 맞서며 나는 오열했어가장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고왜 기어이 살아남아야 하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이런 내 말이 구차한 변명이라도 될런지이 변명조차 카오스의 중심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울음일지의식이 순수해지는 새벽에는 고요히 무릎을 꿇고 앉아짓누르는 죄의식으로 무거워진 눈꺼풀에 잔뜩 힘을 주며먼 산 메..
시노래 3곡 제작에 도전! 시노래 제작에 도전!며칠 전 출간된 내 시집 80쪽에 실린 시 "꽃잎"을 기초로 내가 시노래 가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유혹"과 "원룸의 의미"는 내가 쓴 시 그대로 가사로 하기로 했다.내가 직접 멜로디를 붙인 후 음악 전문가에게 편곡을 맡겨서 조만간 음반으로 제작할 예정이다. 누가 부를지도 아직은 정해지지 않았다. 시노래 가수 박경하 님이 부른다면 대박날 시노래가 될 거라고 나는 감히 확신한다.꽃잎 / 우원규 시인무심히 흘러가는 강물 위로 오색 빛고운 꽃잎들을 띄워 보낸다 꽃잎 하나에 아련한 추억 하나저 멀리 흘러간다 강물을 거슬러 자꾸만 돌아오는하얀 꽃잎 하나 내 앞에 서성이며 아쉬워 맴돌다 떠나간다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무심한 강물처럼 꽃잎 하나에 아련한 추억 하나저 멀리 흘러간다 .(간주)강물을 ..
[수필] 투명을 동경하며 / 우원규 투명을 동경하며 / 우원규 가을엔 가급적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는 게 좋다. 넓이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쪽빛 연못에 한번 빠지면 도무지 헤어나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런 일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오로지 하늘만 자꾸 쳐다보게 된다. 이름 하여 "가을 하늘 중독 증후군"이다. 투명한 가을 햇살은 아주 맑아서 마음속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닿는다. 투명한 바람은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켜켜이 쌓인 먼지들을 모두 깨끗이 날려보낸다.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우주의 머나먼 어느 행성에 사는 사람들끼리는 서로의 마음이 그대로 다 들여다 보인다고 한다. 그런 투명한 마음을 갖고 싶다. 누가 들여다보아도 숨길 게 없는 가을 하늘처럼 맑고 푸른 마음을 소유하고 싶다. 모든 위선과 가식을 훨훨 벗어버린 적나라할 정도의 솔..
우원규 시인의 시집 <꿈속에서 또 꿈을 꾸다> 출간 소식 (생략)엄마의 꿈속에서 내가 또 꿈을 꾸어요너무나 환상적인 꿈이에요엄마그리운 나의 자궁이여_엄마를 불러봐요 中*여기서 엄마는 우주를 창조한 여신의 상징이다. 이번 시집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꿈속의 꿈이라는 테마는 장자의 호접지몽과도 결을 같이하며, 현대 물리학에서 우주를 설명하는 가설 중 가상현실 우주론(simulation hypothesis)이나 홀로그램 우주론과도 맥이 닿아 있다.우원규 시인의 신간 시집 (계간 애지 刊)대표시우원규 시인경북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만다라문학 시 신인상(2009)만다라문학 단편소설 신인상(2010)한국문학신문 단편소설 작품상(2011)시집 《위로》(2012)선수필 신인상(2013)시집 《꿈속에서 또 꿈을 꾸다》(2025)티스토리 "우원규 시인의 서재" 운영명상을 하며 시..
[단편소설] 유리벽 / 우원규 [단편소설] 유리벽 / 우원규_한국문학신문 단편소설 작품상 수상작(2011년)나는 칼바람이 시퍼렇게 일렁이는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삼 개월째 필사적으로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고 길게 한숨지으며 차가운 담배 연기가 흩어지는 모습에서 인생무상이라는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자식! 죽어도 꼭 이런 데서 죽지. 지가 무슨 호국 혼이라도 되는 줄 아나! 나는 커다란 바위 위에 올라 서서 천 년이 넘도록 냉혹한 파도의 손길을 숙명인 양 감내하고 있는 문무왕릉 대왕암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혹시나 남아 있을지도 모를 Y의 흔적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내가 Y의 이메일을 받은 것은 그 전날 밤이었다. 과대망상증 환자답게, 유대교 카발라의 최고 상위 의지체를 의미하는 아인소프를 인터넷상에서 그의 별명으로 사용했던 Y는,..